고통총량의 원리

육신의 고통, 정신의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바꾸어 다시 나타난다.

인간은 육신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함을 피하려 하지만, 그것은 다른 얼굴로 내 앞에 서서 또다시 질문을 던지면서 영의 인격체는 힌트를 덤으로 얹어서 고통과 같이 던져 준다.

나는 육신의 고통은 아주 어릴때부터 겪었다. 육신의 아품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돌아가신 내어머니와 내가 성인 되어서 육신의 고통 원인을 찾았다.

그래서 육신의 고통은 짐이 아니라, 깨달음을 위한 표시다.

나는 한때 타인으로 인해 오는 경제의 고통을 버렸다고 생각했다.

큰 실패와 상실을 겪은 뒤, 그것을 잊고 새로운 길을 가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고통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왔다.

관계 속에서, 선택 속에서, 그리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마다. 그때 알았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나를 가르치기 위해 돌아온다는 것을.

고통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순수 인격체를 시험한다. 순수 인격체가 인간에게 시험지를 던졌을 때 인간이 조금만 자아를 알았다면 시함지 던질 때 반사 해줄수 있었을것같다.

시험지를 받든, 안 받든 다 괜찮다. 고통을 감당만 할 수 만 있다면 어떠한 고통이 와도

그것은 단순히 괴로움이 아니라, 성장의 문턱이다.

고통을 피하면 같은 문제가 다른 모습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찾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깨달음이 된다.

자연도 고통을 보존한다.

땅은 상처를 입어야 비옥해지고, 씨앗은 껍질을 깨뜨려야 싹을 틔운다.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정이다.

인간의 삶도 이와 같다. 고통은 존재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더 큰 차원으로 이끌기 위해 오는 것이다.

나는 육신의 고통과 정신의 피폐함 속에서 성장했다.

실패는 나를 단단하게 했고, 상실은 나를 겸손하게 했다.

고통은 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나를 다시 세워 주웠다.

고통 총량의 법칙은 이렇게 말한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너를 더 큰 존재로 만들기 위해 돌아온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고통은 나를 시험하는 동시에 나를 성장시키는 힘이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때 고통은 더 이상 짐이 아니라, 깨달음의 길이 된다.

삶은 고통과 기쁨이 함께하는 길이다.

고통을 없애려는 순간, 기쁨도 사라진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순간, 기쁨은 더 깊어진다.

고통 총량의 법칙은 인간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고통은 너를 무너뜨리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너를 더 큰 존재로 만들기 위해 오는 것이다.

어려서 겪은 육신의 고통은 하늘을 원망하며 학창 시절을 병으로 반납 하였다.

영의 인격체는 인간이 병원에 가는 것을 방해 하였고, 한방으로 병을 고치는 것을 원했다.

고통을 피하고자 병원으로 향했다면, 지병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영의 인격체는 항시 의식만 깨어 있다면 힌트를 준다.

수행하면서 내 병을 고치고자 산약초 연구를 하였고, 약의 효능을 검증하여 한약청을 만들게 되었다.

만약 고통의 총량의 법칙을 몰랐다면 지금도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속에서 삶의 질이 떨어져 생활해 나가지 않았을까?

경제의 고통도 총열량이 있다는 힌트를 받고는 공부를 했다.

육신의 고통, 경제의 고통, 양육의 고통, 부모관계의 고통, 직장 상사와의 고통, ,,,총 열량이 있다는 법칙을 안다면 피하거나, 원망하지말고, 마딱트리고 가면 된다.

그럴 때 정신은 진화가 되면서 고생이 미래의 즐거움으로 반전의 기회를 잡는다.

고통의 총 열량의 원리를 잊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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